홍승혜의 움직이는 그리드
홍승혜가 1997년부터 지속해 온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 작업들은 컴퓨터 픽셀을 기본단위로 하여 탄생과 증식을 반복하는 형태들의 삶 뿐 아니라 그 형태들 간의 관계, 즉 같으면서도 다른 가족유사성을 드러낸다. 그녀의 유기적 기하학은 기하 형태의 짜임 즉 그리드(grid)를 이루고 있는 셈인데, 사실 이는 그녀의 작업 전체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홍승혜는 그리드 위에서 작업하면서도 또한 그것을 원래의 거처로부터 끊임없이 미끄러지게 한다. 그녀의 그리드는 다양한 의미들 사이에서, 여러 영역들을 가로지르며, 그리고 예술과 삶의 경계마저 넘나들며 정박과 유랑을 지속한다.
기하학적 세포들의 복제와 증식을 보여 주는 홍승혜의 픽셀 작품은 인공의 생명체 즉 일종의 사이보그다. 인공두뇌학의 산물인 그것은 생명체와 기계가 혼입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컴퓨터는 편집과 복제, 여과 등 기계적 과정을 통해 생명현상과 같은 신속하고 무한한 이미지의 변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여기서 사각형의 세포들은 벽돌로 창문으로 계단으로 그리고 집으로 증식한다. 기하학적 단위로 이루어진 형식적 구성이자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재현하는 도상인 그것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는 창작과 인용의 경계 또한 위반한다. 예술가의 독창적 창작물이 기존 컴퓨터 환경에서 차용한 레디메이드 형상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의 픽셀 작업에서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논리의 표상으로서의 기하학이 시적 서정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녀에 의해 그리드는 이처럼 추상과 구상, 창작과 인용, 논리와 감성 사이를 왕래하는 유연한 기호가 되었다. 그녀의 그리드는 순수 추상, 절대 창조, 엄격한 논리의 기호로서의 모더니스트 그리드를 위반하는 것이다.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은 평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고 장르를 넘나들며 움직인다. 그녀의 그리드는 회화와 조각, 건축,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아우르는 너른 기호다. 그녀는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거나 벽화나 칸막이 등을 건축적 공간에 부가하기도 하고, 건물 속의 특정 공간을 작품화하기도 한다. 형태의 움직임과 음악을 도입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나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효과를 탐구한 ‘음악에의 헌정’전 같은 경우는 미술과 음악이 만난 경우다. 한편, 그녀의 아트 북들은 미술과 문학이 만난 경우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호작용하는 읽는 그림 또는 보는 글이다.
홍승혜는 또한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로베르 필리우의 말을 인용하면서, 삶과 예술의 경계도 넘나든다. 예술의 초월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쓰이는 그리드가 그녀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생활환경으로 침투한다. 책상과 의자로 램프로 심지어 과자로도 거듭나는 그녀의 그리드는 그림의 형식이면서도 또한 삶의 공간을 디자인하는 장식인 셈이다. 그녀에게는 예술과 공예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예술과 삶을 끊임없이 왕래하면서 예술을 삶에 주입하고 삶을 예술로 소환한다.
홍승혜의 작업을 여성적인 것으로 젠더링할 수 있다면 이같은 무한한 ‘받아들임’ 즉 모성적 포용성에 있다. 그녀는 서로 다른 가치들과 목표들, 영역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포용(inclusion)의 원리는 모더니즘의 배제(exclusion)의 논리, 즉 모던 아트라는 순종의 혈통을 뽑아내기 위한 가부장적 논리를 비껴간다. 그녀의 작업은 순종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 즉 여러 다른 카테고리들의 ‘사이’에 있다. 이러한 ‘사이라는 위치(in-between-ness)’가 홍승혜 예술의 정체다. 그녀의 그리드는 ‘형식(form)’으로서의 미술을 시위하기 위한 순수의 레토릭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제외된 부분들을 연결하는 혼성의 네트워크다. 끊임없이 소외된 영역들을 배려하고 되살리는 그것은 주류와 그 권력에 대응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윤난지, 미술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오늘의 미술사를 말하다>, 문화예술위원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