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KIM EUN JU

(b.1965)

김은주 KIM EUN JU

부산은 바다가 있는 해안도시이다.
나는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리고 20년 넘게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15년 정도를 인체만 그렸었다.
인체 작업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표현이었고
외치고 싶은 말이었다.
함몰되지 않았음을, 다시 일어남을, 삶의 고단함에서도
쓰러지지 않았음을 위로하는 장소였다.

영원히 인체만 할 것 같았던 내게 아버지의 죽음으로
물이라는 소재가 찾아왔다.
아버지와 함께한 고향의 바다 – 따뜻하고 평온한
그리움.
바다는 내게 하나의 풍경이 아닌 내면의 리듬이 되었음을
파도를 그리며, 그 파도가 모인 바다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림은 내게 인식을 넘은 본성을 가르쳐 주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속에 존재했던 것들이
하나씩 발견된다.
무엇을 그려야 할 지 고민했던 때도 있었다.
진짜 그림은 그 형상을 뚫고 진정성으로 내게
다가옴을 안다.

연필을 잡고 종이 위에 가만히 그려본다.
중심에서부터 한 잎씩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꽃이 되어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람이 많다. 바람이 불면
정지되어 있던 풍경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바람 속에
꽃, 바람은 모습이 없다. 사물의 사이사이를 움직이며
휘돌아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사물을
움직이는 힘, 빈 공간이 바람이다.

가만히 꽃을 그려보았다.
작은 연필이 선들을 모아 하나의
꽃잎이 되고 꽃잎이 모여서 커다란 꽃이 되었다.
내 속에서 부는 바람에 꽃이 휘날린다.

지금은 꽃을 그리고 있지만 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 다 사라지고 그리는 행위만이 남아
있다.
평온해진다.
그리는 것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형태를 빌려 내 본성에 에너지를 담으려 한다.

- 작가노트 중 -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