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물질'에 대하여
우리가 보는 세계는 모두 빛의 반사에 의한 것. 빛이 물질의 표면 어딘가에 굴절해, 우리의 망막에 재현되어 뇌에 신호로 전달된다. 그래서 우리는 뇌의 스크린에 다운로드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인지(혹은 인식)한다. 뇌에는 그 물질의 형상이나 색채, 질감, 질량 같은 정보가 전해진다. 김이수(Kim, Yisu)는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정보를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선상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의 뇌에 직접 시각을 통해 자극을 주는 신호(signal)와 같은 것이다.
김이수의 작품은 유백색(milky-white)의 아크릴판 표면에 붙인 테이프가 레이어가 되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고, 그 표면(surface)에는 반사된 빛이 축적되어 있다. 그 작품 표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앵플라맹스(Inframince, M. 뒤샹의 신조어)는 레이어 사이에서 얇디얇은 빛으로 교차한다. 회화에 다층의 빛을 끌어들여 이미지를 추구해 온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빛의 예술가 렘브란트, 인상파의 세잔과 모네와 같은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빛은 미술의 영원한 테마였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김이수도 ‘빛의 추구자’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숭고한 빛으로 조형적 사고를 확장하고 있다. 빛의 굴절에 의해 그녀의 작품은 마치 수평선에 가라앉는 석양 혹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보인다. 또는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이탈해 우주선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주공간처럼 보인다. 테이프를 층층이 붙인 레이어, 광속(光速) 촬영의 정지된 시간 같은 이미지는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감각을 선보이는 그녀를 ‘빛의 추구자’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이수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재로 사용되는 반투명 아크릴의 비물질적 요소이다. 반투명 아크릴의 투과성은 앵플라맹스의 개념에 적절한 재료이다. 작품의 지지체로 반투명 아크릴을 사용함으로써 이미지를 배제한 화면의 여백은 전통적인 타블로와는 다른 오리지낼리티를 가지게 된다. 아크릴이 지니고 있는 투과성, 그 비물질성이야말로 빛과 레이어로 그려내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앵플라맹스의 지지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시스템과 동기화에 지배되어, 삶은 과학과 이성에 구속된다. 인터넷 환경 속에서 타자와 접속하고, 스케줄을 관리하고, 이미지를 첨부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하듯이,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마치 이해자인 것처럼 동기화하고 있다. 예술가도 작품이라 불리는 ‘정신과 물질’에 관여함으로써 세계와 동기화하고, 자기의 내면을 주도하는 이성에 의해 타자의 세계와 접촉한다.
빛을 포용하는 김이수는 마치 안개 속의 호수 표면을 떠도는 작은 보트와 같은 희미한 앵플라맹스의 풍경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녀의 감성은 바로 이 앵플라맹스의 개념에 지탱되고 있다. 그 풍경은 수평선과 같이 어디까지 가도 맞닿을 수 없는 영원한 경계 속에 존재한다. 김이수는 그 경계를 앵플라맹스의 풍경으로 불러내고 있다.
우에다 유조 (갤러리큐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