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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 YOON

관계의 장소로서의 회화, 그로부터의 대화

이소윤 작가의 작업에는 그가 관심을 갖고 주목해왔던 화엄(華嚴)의 사유가 담겨 있다. 화엄은 대립이나 차별이 없는 세계이자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 융합이 되어 있는 세계이다. 작가는 각자가 "고유한 채로 함께 조화를 이룬다는 것에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낀다"라고 하였다. 그의 작업에는 이처럼 형상과 형상, 색채와 색채가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개별과 개별이 서로 다른 형상이며 색채이지만 이 모두가 또한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술적 방법론과 사유방식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동양의 고전적 철학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탈근대 시대 이후의 상황에서근래 주목 받고 있는 맥락과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동시대 서구의 미학적 경향 일부를 연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대 미술 특히 서구가 주도해 온 것으로 현대미술의 맥락 가운데 작업해온 작가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의 사유 방식을 넘나들며 보다 나은 대안을 찾게 되었던 것은 이 시대가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성과들은 근대적 사유체계의 토대를 흔들었고 사물에 영구 불변하는 본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 구조 사이의 관계가 사물을 감각하게 만드는 현상을 결정하는 것임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다시 말해 객관적 존재라는 것은 사실 주관적 인식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함께 작동되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는 주체관 뿐만 아니라 타자 개념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고유의 본질이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이를 합리적 분석의 과정을 통해 추구해나가고자 했던 여러 영역에서의 시도들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소윤 작가의 작업은 시각적으로는 역사적 추상미술에서의 회화와 가까운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서구 현대회화가 평면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회화의 본질을 추구해 나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작업한 것임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서 순수조형 요소들을 향한 형식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나 정신세계 혹은 이 세계의 구조를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적 기표와 파동처럼 꿈틀대며 울려 나오는 이미지들을 생성하고 그 관계가 만들어내는 서사의 향연을 연출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이 세계가 서로 관계하고 있는 방식 혹은 그것을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그려낸 것이기에 사실 심오한 논리를 추구하는 의미부여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화엄 사상에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관객을 타자화하거나 그런 맥락에서 작업의 의미를 독점하고자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가 밝힌 것처럼 그의 작업은 그저 관객마다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번역의 장소이며 이해와 오해, 소통과 오독이 함께 오갈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개별 주체로부터의 자유로운 해석이 서로가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담론들이 어떠한 우열도 없는 동등함 가운데 상생하고 조화하는 화엄의 서사를 기획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세계 속으로 개별 사물들을 따로 보게 된다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세계 속 사물들 가운데 그 다름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면 불통은 역으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가 '나의 화엄은 짙은 녹음을 떠올린 데에서 출발하였다'고 말하였던것은 산을 바라보면서 나무들을 하나하나 따로 떨어뜨려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수 많은 나무들과 함께 그 사이의 관계를 향해 시선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게 되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초록빛 녹음이 짙게 베어 있는 시선을 서로 다른 색채와 형태로 채워져 있는 회화라는 자유로운 번역의 장소 안에 담아 두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그의 회화라는 장소에서 대화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 승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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