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감응 체계
- 5월 23일
- 2분 분량
뉴스프리존
2026.05.12
김춘수, 장승택, 안정숙, 김영헌 4인 작업 통해 조명
14일~6월13일 아트프로젝트 씨오 ‘추상의 역학’전

20세기 후반 이후 추상미술은 더 이상 순수 형식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의 추상은 재현을 거부하는 양식이라기보다, 감각과 물질, 신체와 시간, 디지털 환경까지 포괄하며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감응 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14일부터 6월 13일까지 아트프로젝트 씨오(Art Project CO)에서 열리는 그룹전 ‘추상의 역학: 긴장과 공명’은 이러한 동시대 추상회화의 흐름 속에서 회화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생성되는 장(場)’으로 바라본다.
특히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다시 부상하고 있는 ‘감각적 추상(Sensuous Abstraction)’과 ‘물질 기반 회화(Material-based Painting)’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회화는 오히려 손의 감각, 물질의 밀도, 반복되는 신체 행위를 통해 인간적 감응의 깊이를 회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면은 더 이상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시간과 움직임, 촉각적 경험이 응축된 하나의 사건(event)으로 이해된다.

이번 전시는 김춘수, 장승택, 안정숙, 김영헌의 작업을 통해 현대 추상회화가 어떻게 물질과 신체, 빛과 시간, 감각과 기술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조망한다. 네 작가는 서로 다른 조형 언어를 기반으로 화면 안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균형, 반복과 축적, 충돌과 공명의 구조를 탐구하며, 동시대 추상이 지닌 감각적·철학적 확장 가능성을 드러낸다.

김춘수의 작업은 수행적 추상의 계보를 보여준다. 그는 ‘울트라마린’이라는 단일 색채를 반복적으로 문지르고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화면 위에 시간의 층위를 축적한다. 붓 대신 손가락과 신체를 사용하는 그의 회화는 색채를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닌 신체적 흔적과 호흡의 기록으로 전환시킨다. 이브 클랭 이후 단색화와 한국 단색화가 공유해온 수행성과 물질성을 동시대적으로 확장한다.
장승택의 ‘레이어링(Layering)’ 작업은 빛과 물질, 시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투명 안료와 미디엄이 중첩된 화면은 빛의 투과와 굴절에 따라 미세한 진동과 깊이를 만들어내며, 평면을 하나의 감각적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색면 회화를 넘어, 지각의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현상학적 회화로 읽힌다. 관객은 작품을 ‘본다’기보다 빛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안정숙의 작업은 기하학적 질서와 유기적 에너지 사이의 긴장을 통해 현대 추상이 지닌 구조적 미학을 보여준다.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힘들이 충돌하고 조율되며 만들어내는 균형 상태는 단순한 구성의 차원을 넘어, 동시대 사회가 지닌 불안과 조화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화면은 차가운 구조 속에서도 생동하는 리듬과 정서적 진동을 품으며, 질서와 감각이 공존하는 추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영헌은 디지털 시대의 시각 경험을 회화로 번역한다. 색채의 충돌과 리듬, 구축과 해체가 반복되는 그의 화면은 전파 간섭이나 글리치(Glitch) 현상을 연상시키며,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현대적 감각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 추상이 더 이상 자연이나 내면의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지각 체계 자체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 시대 이후 회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 물질성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전시는 오늘날 추상회화가 왜 다시 중요한 미학적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추상은더 이상 멈춰 있는 형식이 아니다. 물질과 신체, 시간과 감각이 서로 밀고 당기며 생성되는 하나의 운동이다. 현대 추상 회화는 더 이상 정지된 화면 속의 고정된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화가의 신체가 남긴 궤적이며, 빛과 물질이 교차하는 지점이자, 동시대 기술 문명이 캔버스 위로 여과된 결과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