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KIM DONG YOO
b.1965
김동유는 상투적인 이미지를 차용한다. 키치를 차용하고, 크리쉐를 차용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고, 미술사를 차용한다. 이렇게 차용된 이미지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그 이미지와 의미가 전복된다. 전복된 의미는 그림에 대한 투명하고 총체적인 독해를 방해하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한다. 그러니까 의미놀이, 착시놀이, 키치그림, 나비그림, 이중그림(초상화 연작), 미술사 연작 등의 의미의 지점들로 현상한다. 이 의미의 좌표들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이미지와 그 의미를 증식해나간다.
의미놀이. 개념미술가 요셉 코주스는 실제의 의자와 그 의자를 찍은 실물 크기의 사진 그리고 의자에 해당하는 사전적 정의를 제안한다. 또는 실제의 망치와 그 망치를 찍은 실물 크기의 사진 그리고 망치에 해당하는 사전적 정의를 제안한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의자 또는 망치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들 가운데 무엇에서 비롯되었느냐고 묻는다. 김동유는 실제의 팔레트와 그 팔레트를 찍은 실물 크기의 사진 그리고 이를 그대로 재현한 그림을 제안한다. 또는 실제의 레코드 재킷과 그 재킷을 찍은 실물 크기의 사진 그리고 이를 그대로 재현한 그림을 제안한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팔레트 또는 레코드 재킷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들 가운데 무엇에서 비롯되었느냐고 묻는다.
이런 물음 속에는 소여된 조건으로서의 실제와 그 실제를 지시하는 의미와의 관계에 대한 동일시(동일성)의 인식 혹은 비동일시(비동일성)의 인식이 들어있다. 동일시의 인식은 실제와 의미가 일대일의 관계로 서로 대응하고 조응한다는 결정론적 인식이며, 닫힌 체계, 완결된 체계, 자족적인 체계, 비활성 체계가 이를 지지한다. 비동일시의 인식은 실제와 의미가 일대일의 관계로 서로 조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수한) 차이(의미론적 차이)를 만들어낼 뿐이라는 비결정론적 인식이며, 열린 체계, 미완의 체계, 관계적 체계, 활성 체계가 이를 지지한다.
실제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의미는 주관적 사실이다. 실제의 좌표는 고정돼 있지만 의미의 좌표는 유동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형의 실제보다는 무형의 실제에서, 지시적 의미보다는 가치론적 의미에서 더 극명해진다. 그나마 실제가 객관적이며 그 좌표가 고정돼 있다는 인식마저도 그 자체 사실이기보다는 한갓 신념의 수준에서만 정당화될 뿐이다. 플라톤의 관념상(궁극적 실제로서의 이데아)마저도 사실상 감각경험을 근거로 유추된 것, 생활경험이 투사된 상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현상학은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념상은 이미 지각상의 소산인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감각경험이나 생활경험이 전개되는 장은 다름 아닌 온갖 이질적인 의미들이 부침하고 상충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장, 차이 나는 의미들이 생산되는 장, 의미론적 장이기도 하다.
고충환(미술평론가) <김동유 - 의미의 재구성, 크리쉐의 재구성> 평론글 중에서
bottom of 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