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_흔적으로 비추다.

2022.05.29 - 07.09

김근태, 김춘수, 최상철

 


‘공(空)’_흔적으로 비추다

아트프로젝트씨오(대표 임은혜)에서는 하반기를 여는 첫 전시로 김근태, 김춘수, 최상철 3인의 작가를 모시고, 《‘공(空)’_흔적으로 비추다(Void _ Imprint Unveiled)》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제목은 비어있되 생(生)의 다의성을 지닌 ‘공(空)’에 “마음에 새겨진 의미의 흔적을 은은히 비춘다”는 미학을 담아 “Void_ Imprint Unveiled”라 명명하였다. 참여작가들의 공통점은 서양재료 속에서도 문인(文人)미학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과정이 깊은 정신수행과 더불어 화면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득지심, 응지수(得之心, 應之手)”, 중국 오대(五代)의 형호(荊浩)가 《필법기(筆法記)》에서 내실이 없는 자질구레한 외형에서 벗어나, 정신과 기교가 융화를 이룬 상태-장자가 말한 “득지심, 응지수(得之心, 應之手)”-의 추구와도 상통한다. 이들 작가들은 물(物)에 깃든 성정을 작업과정에 녹여낸 이후에, 손이 답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근태 화백은 이를 위해 자아를 객관화하는 물화(物化)의 과정을 거친다. 수평선으로 대표되는 작가의 이미지 사이에는 다양한 층차와 만난 시간과의 대화가 존재한다. 마치 분청사기의 마지막 단계인 덤벙 기법을 보듯 ‘비정형성 사이의 완전함’이라는 균형의 결과가 작품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 사이의 파장’이다. 그 간극들이 모여 작품 전체를 이루고 이를 바라보는 수평의 눈이 시공간의 결핍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김춘수 화백의 ‘ULTRA MARINE’은 얕음과 깊음을 오가는 묘한 뉘앙스를 지닌다. 청색으로 꽉 채운 화면, 하지만 그 사이에는 물감이 서서히 올라가며 잠식해 간 화면사이의 여백들이 자리한다, 이는 그림을 관통해 세상과 통하는 창(窓)이자,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유화지만 묵화 같은 농담(濃淡)이 자리하기에 하나의 푸름이 아닌 깊고 얕은 청색이 중첩된 오랜 동양화 같은 느낌을 준다. 기존 서양화에선 느낄 수 없는 질료의 한계를 관통하는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손의 흔적이 연결해간 시간과의 화해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최상철 화백의 그림은 파묵(破墨) 기법으로 그려낸 기의 에너지로 점철된 느낌을 자아낸다. 무심히 그어낸 선의 흔적들은 검은 물감을 묻힌 조약돌을 캔버스 위에 수백 번 굴려 남긴 자연스런 흔적이다. 물성이 아니기에 더욱 물성을 물음케 하는 무물(無物)시리즈, 사물의 없음과 있음이 곧 하나라는 뜻으로, 작가는 행위의 자율적 과정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와 세계와 나를 관계 짓는 명상형 작업들을 매력 있게 탐색한다.

이들 3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사람의 손이 그려낸 것이 아닌 자연이 창조해낸 흔적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의도가 비어있는 흔적 속에 은은하게 드러나는 행위들, 이 전시를 통해 관조하는 정신성조차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깊이 있는 명상의 시간과 만나기 바란다.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