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간의 신화 The Myth of Time

신미경, 죠셉초이

2025.6.5 - 7.5

신미경 & 조셉 초이 2인전
시간과 신화의 직조(織造), 《The Myth of Time》


시간은 선형(線形)이 아니다. 그것은 직선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겹쳐지며, 감각의 심연에 잔류하는 침전물이다.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이 말했듯, 시간은 시계로는 셀 수 없는 ‘지속(durée)’이며,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게 시간은 존재의 방식 그 자체다. 《시간의 신화(The Myth of Time)》는 비가시적인 시간의 얼굴을 시각화하려는 두 작가의 실험적 응답이다. 이 전시는 동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신미경과 회화 작가 조셉 초이의 신작을 통해, 시간과 신화라는 추상적 개념이 어떻게 감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형상으로 전환되는지를 탐색한다. 《The Myth of Time》은 시간을 상상하고, 기억을 조각하며, 존재의 본질을 회화하는 전시이다. 우리가 잊었다고 믿는 순간들, 닿지 못한 감정들,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감각들이 예술이라는 형식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닳아 없어지는 천사의 날개일 수도 있고, 잠들기 전 떠오르는 얼굴의 조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빛과 향기의 시간, 조각 이후의 조각, 신미경

작가는 30여 년간 ‘비누’라는 물질을 조각의 언어로 끌어들이며, 존재와 부재의 경계, 기억의 투명성과 감각의 지속성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들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여리고 맑은 빛의 층위를 다차원적으로 확장하며, 이전에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에서 선보였던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의 연장선이자 진화된 형식 실험이다. 비누는 닳고 사라지며 향기를 남긴다. 그것은 곧 감각이 머물다 이내 사라지는 시간의 형태이며, 천사의 형상을 매개로 하여 ‘존재와 무(無)’ 사이의 틈을 환기시킨다. 작가의 <엔젤 시리즈>는 조각이 아니라, 빛과 향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조각이다.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 보는 것과 감지하는 것 사이에서 작품은 조용히 소멸하며, 그 소멸 속에 형상을 남긴다. 이것은 조각 이후의 조각이며, 감각 이후에 남는 감정의 진동이다.

무의식의 중첩과 기억의 회화, 조셉 초이

작가는 시간을 이미지로 쌓아 올린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거주한 그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기억과 자아, 타자와 시간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탐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Figure>. <Bust>, <Study for Portrait> 시리즈는 그러한 무의식의 흐름이 응결된 회화적 중첩이다. 작가는 화면 위에 규칙 없는 기억과 환상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겹쳐나간다. 그것은 무의식의 지도이며, 자아의 거울이다. 화면은 종종 정지된 듯하지만, 그 안엔 꿈처럼 움직이는 이미지의 시간들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질서, 사라지는 서사, 쌓여가는 감정이 색과 형태로 응축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리기’보다 ‘쌓기’를 택한다. 회화는 작가의 의식을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며, 그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형상과 비형상 사이를 왕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질문한다. “기억이 곧 시간이라면, 시간의 얼굴은 과연 무엇인가?” 작가는 대답 대신, 시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중첩되고 해체된 얼굴들, 인지 불가능한 형상들, 그것이야말로 시간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 전시를 통해 시간의 껍질을 벗기고, 그 심연을 감각할 수 있다. 빛과 향, 촉각과 소멸, 기억과 무의식 사이를 걷는 이 전시는 결국 예술이 시간과 신화를 어떻게 직조하는지를 보여주는 시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여정이다. 그것은 다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 감각하고, 사유하고, 공명하는 체험이 된다. 나아가 한국 동시대 미술이 시간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며, 예술이 여전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철학적 통로임을 웅변하기 때문이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그것이 곧 시간이며, 이 전시가 전하는 신화의 본질이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