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SHIN Meekyoung (1967-)
Vanitas, Beyond the Translation
Art Project CO(대표 임은혜)에서는 트랜스레이션를 가로지른 Vanitas 를 새로운 개념으로 끌어들여 기존 ‘페인팅시리즈’와 ‘고스트시리즈 GhostSeries’에 내재한 가능성의 문을 두드리는 신미경 작가의 ‘과정형 전시’를 선보인다. ‘고스트 시리즈’는 무라노의 유리 공예같은 외연을 투명비누로 눈속임한 비누도자기를 활용한다. 이는 도자기의 비싼 원본 형태에 충실하되 특별히 고안한 몰드와 비누가 가진 일회적 속성을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허무한 가운데 꽉 찬’ 양가적 해석 속에 던져 넣는 철학적 작업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체화 시키는가에 있다. 우리의 눈이 만드는 근대 이후의 관계맺기는 인간의 흔적(유물론적 양식)이 만들어낸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페인팅시리즈도 이와 유사한데, 서양과 동양, 현대와 고전이 연결되는 오늘의 사유방식 속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대상을 ‘회의(回議)하라!’는 탈 상징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신미경 작가는 탈 맥락화된 뮤지엄 유물들을 ‘식민지 이데올로기’로서부터 해체시키기 위해 ‘보이는 대상(Text)’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장치(Context)’들을 활용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넘나드는 이율배반적 해석구조를 사용해왔다. 이른바 트랜스레이션 Translation, “신화화된 사유 안에 감추어진 과거의 간극”을 탈구조화 시키는 이중놀이를 통해 현재화 시키는 것이다. 신미경은 유물의 재현을 뮈토스 Mythos 적 구조 안에서 새롭게 재정의한다. 과거엔 종교였던 신화적 대상들은 믿음이 해체되면서 이성과 진리의 언어인 로고스(Logos)를 잃어버리고 아득한 과거에 대한 집단적 껍데기로 전락하는데, 대상만 남겨진 신화는 기존의미와는 관계없이 허무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라틴어로 허무·허영·덧없음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라는 성경 전도서 1 장 2 절에 나오는 구절로, 인생무상의 의미를 담은 허무주의로 해석된다. 바니타스를 현재적 언어로 재해석한 신미경 작가의 논지는 텅빈 사이, 동양적 해석으로 보자면 허실상생(虛實相生)의 다양성을 드러냄으로써, 유물이 가진 원본성에 대해 가치론적 질문을 남긴다. 프레임 안에 갇힌 페인팅과 근사한 도자같은 고스트 시리즈는 기존 대상의 전복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방향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이다. 바니타스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뜻한다. 작가의 작품들은 성서에 등장하는 ‘Memento Mori(너의 죽음을 기억하라.)’와 같이, 죽음이 하는 말(=의인화한 죽음의 발언)을 통해 박물학이 제시해온 ‘근대주의적 사유’를 반성케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라는 교훈을 남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신미경의 작품들이 사실의 재현(the Representation of Reality)을 왜 번역하고 있으며, 왜 바니타스(Vanitas)를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은 일회적 대상을 무게감 있는 신화구조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물질적이지만, 논리적 사색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비유와 직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당신이 경이(驚異)롭게 보는 대상을 의심하라!”는 회의론적 철학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은 번역과 해석의 내러티브와 유물론적 해석의 탈피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탐구를 보여주는 과정지향적 작업인 것이다.
안현정 글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